
집에서 요리하면서 가족과 대화를 이어가거나, 일하면서 동료의 질문에 바로 답하는 상황. 흔히 "동시에 여러 일을 한다"고 표현하는 이 멀티태스킹 능력에 성별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끕니다.
영국 브루넬대 연구팀이 성인 7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은 실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방식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하다가 타이머가 울리면 잠시 멈추고 필기 과제를 처리한 뒤 다시 요리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동시에 20초 간격으로 흘러나오는 질문에도 답해야 했죠.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요리나 필기 같은 과제 수행 능력 자체는 남녀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화, 즉 언어적 의사소통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여성은 28개 질문 중 평균 24.76개에 답했지만(무응답률 11.6%), 남성은 20.24개에 그쳤습니다(무응답률 27.7%). 남성의 무응답률이 여성의 두 배를 넘는 셈입니다.
연구팀은 이 차이를 몇 가지 요인으로 설명합니다. 남성이 멀티태스킹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통제력과 주의력이 낮고, 시간 압박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시간이 촉박할수록 이런 경향이 더 뚜렷해졌습니다. 여기에 진화적으로 여성이 사회적 대화 행동에 더 많이 관여해온 배경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연구를 이끈 앙드레 J. 사메이타트 박사는 이런 소통 감소가 협업이 중요한 업무 환경에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왜 대답이 줄어드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도 "바쁠 때 말 걸면 대답을 잘 안 한다"는 흔한 불만이 이런 메커니즘과 관련 있을지 모릅니다.
다행히 멀티태스킹 능력은 훈련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근거도 있습니다. 호주 퀸즐랜드대 연구에서는 100명의 성인이 멀티태스킹 훈련을 거친 뒤 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의 기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왜 대답이 없냐"고 서운해하기 전에, 이런 성별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심리학 연구(Psychological Research)'에 최근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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